본문 바로가기

Sense Up! TV

윤은혜 연기 논란,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일까?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 연기 논란을 지켜보다가, 한가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과연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일까요? 우리가 연기가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그러니까, 윤은혜의 연기가 어떻기에 몇몇 분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우리가 봤을때 좋고 나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보고 맛있다, 맛없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배우의 연기도 딱 봤을때 잘한다, 못한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기준이 없다면 배우가 많이 억울하겠죠?

그렇다면 과연,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를 말할까요?



좋은 배우는 타고 나야 한다

먼저 좋은 배우는 타고 나야합니다. 선천적 자질이 없는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배우에게 외모, 목소리 등 밖으로 보이는 재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로부터 좋은 배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목소리와 발성에 대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배우의 외모에 대한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당연히 연기력-표현력이지요.

사실 윤은혜-에 대한 논란도, 대부분 이 자질- 그 중에서도 발성에 대한 지적이죠? 그리고 최지우를 비롯한 숱한 스타들이 지적받았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발성 훈련을 제대로 받은 연극판 출신 배우들에게선 거의 지적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잠시 무성영화의 시대가 있기도 했지만, 그 이전 연극의 시대나, 그 이후 유성영화의 시대가 된 다음부터, 배우의 발성과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좋은 배우를 논할 때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항목입니다. 좋은 배우는, 분명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기에서 몸짓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소리임을 감안할때, 이는 당연한 것이라 하겠네요.

외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속 주인공은 보는 사람의 감정이 투영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은 사랑 받거나, 미움을 받거나, 나와 비슷해서 공감을 하게 되거나, 어찌되었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당연히 평범한 얼굴은 주목받기 어렵습니다. 대신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 기품있는 외모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번에 끌어올 수 있습니다.




▲ '여신' 사라 베르나르


...하지만 동시에, 이런 뛰어난 자질들이 배우의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9세기말 활동한 프랑스 여배우 '여신'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가 그런 경우입니다. 큰 키에 마른 몸매, 깊고 검은 눈동자와 '황금의 종소리'라 불리는 목소리를 가졌던 베르나르는, 50여년동안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고전극'에서는 강할 수 있었지만, 중산층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연극에선 오히려 이상하게 보여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베르나르 자신의 한계였지요. .. 실은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많은 배우들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반면 에드먼드 킨(Edmund Kean, 1787~1833)은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경우 입니다. 작은 키에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진 킨은, 우아한 배역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연기기술들을 연마하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찾아온 행운,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을 맡아달라는 섭외가 들어오게 되죠. 그리고 그는 그 배역을 통해 지극히 인간적인, 비열하고 치사하면서도 광란에 빠진듯한 연기를 선보여 관객의 대호평을 받게 됩니다. ... 그가 자신의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았다면, 당대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런 연기가 나올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헬로TV > VOD > 로맨스/드라마 > 베니스의 상인 : 에드워드 킨이 출연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이 한계를 정면으로 깨고나간 배우가 있다면, 단연 '김혜자'를 들 수가 있습니다. <전원일기>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 어머니상으로 자리잡았던 그녀는, 영화 <마더>를 통해 자신이 구축해 놓은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파괴하면서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어머니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이제는 진짜 배우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위치에 자리매김 될 수 있었습니다.

(헬로TV > VOD > 최신영화 > 마더)



위엄 vs 광기 - 이성적 배우와 감성적 배우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연기는 타고난 자질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배우는 영혼과 이승을 잇는다고 여겨지는, 영매와 비슷한 존재입니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숨쉬도록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본 속으로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인물이, 배우가 움직이고, 웃고, 말을 하는 순간, 살아서 우리 눈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배우는 그 사람 자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서도 그 사람인양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연기고, 흔히 말하는 캐릭터 구축-_-입니다. 텍스트 속의 인물을 떠먹어 자신에게 입히는 과정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배우의 틀이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성적인 배우, 자신이 맡은 배역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타인을 관찰하며, 그래서 하나의 인물을 조각하듯 자신에게 각인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성적인 배우, 자신이 맡은 역할과 해야할 행동에 대해, 직관적으로 판단하며, 그래서 드라마 속의 호흡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 끌레롱의 공연장면을 묘사한 그림



예를 들어 18세기 프랑스 연극의 대표 배우였던 끌레롱(Hyppolite Clairon, 1723~1803)과 그녀의 라이벌이었던 뒤무닐(Marie-Francoise Dumesnil, 1713~1803)의 경우를 볼까요?

가난한 무명의 배우에서 일약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가 되었던 끌레롱은, 자신의 연기를 위해 몇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첫번째는 목소리를 올바르게 운용하는 것, 두번째는 체력을 잘 유지하는 것, 그리고 세번째는 대본을 수백번 읽어가며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 미술등 관련 학문까지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지요.

반면 뒤므닐은 볼테르의 도움을 받아 어떤 연기 규칙을 따르기 보다 직감에 의존하는 연기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 격정을 터트리면서 연기 할 수가 있었고, 가끔은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술을 퍼마시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겸 배우(?)가 이런 감성적 배우중 하나라면, 이상한 말일까요? <똥파리>에서 보여준 양익준의 연기는, 자신의 삶이 반영되어 있기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말 그대로 내지르는 느낌입니다. 연기한다기 보다는, 바로 거기에 서 있는 배우 자신이 충실하게 투영되는 느낌, 일종의 리얼리티.

(헬로TV > VOD > 국내영화 > 똥파리)


그 밖에 좋은 대본과 감독과의 만남, 상대 배우의 문제, 무대/촬영 현장의 호흡등 여러가지가 더 있긴 하지만.. 그건 일단 배우 바깥의 문제니까 내버려 두기로 하구요-




<아가씨를 부탁해>의 배우들에게 바라는 것



결국 타고난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결합해서 좋은 배우는 만들어집니다. 무엇보다 좋은 배우는,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배우입니다. (응?) 사실 배우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서 그 배역 자체가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드라마 자체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국 배우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배역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드라마 속, 그 씬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주기 위한 그럴듯함-입니다. 결국 이야기 속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있고, 그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가씨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아쉬운 것도 바로 이 그럴듯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대로, 이 드라마속 인물들은 각각 다른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그냥 그대로 모여있는 느낌입니다. 각각 <아부해>의 캐릭터들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궁2>의 윤은혜, <내조의 여왕>의 윤상현, <내사랑>의 정일우, <찬란한 유산>의 문채원이 그냥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배우만 있고 <아가씨를 부탁해>만의 캐릭터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윤은혜는 재벌 2세가 아니라 스타병에 걸린, 벼락치기 인기를 얻은 연예인 같고- 윤상현은 사장이었던 태봉이가 부도난 다음 제비가 된 모습 같아요. 정일우는 <내사랑>의 복학생이 알고보니 재벌2세에 사법고시도 통과했더라-하는 느낌이고. 이렇게 각각 다른 드라마의 캐릭터들의 특징을 드라마에 그대로 가져온 것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만 단점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캐릭터들이, 각각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희망사항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노력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있습니다. 어떤 배우라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만 그냥 팔아먹어서는 오래가기가 힘듭니까요.

그래서 윤은혜와 윤상현과 정일우와 문채원이 아니난, 강혜나와 서동찬과 이태윤과 여의주가, 우리들 마음에 뛰어들어와 우리를 울고 웃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씨를 부탁해>를 자주 보는 사람으로써, 배우들에게 가져보는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 <아가씨를 부탁해>는 헬로TV > VOD > KBS 다시보기-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