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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금요일 밤은 목욕재계 후 캔맥주와 함께 달나도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15. 09:30


뉴욕에는 성(性)과 도시를 외치는 네 여자가 있었다면, 서울에는 도시가 달콤하다고 외치는 3명의 여자가 있다. 출퇴근할 때마다 지옥같은 지하철에 시달리고, 아침마다 동전 없냐며 은근슬쩍 커피를 강탈해가는 직장 선배에, 비명소리 나오는 마감까지. 직장인의 도시는 그다지 달콤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전자렌지에 오래 돌린 찹쌀떡처럼 바닥에 늘어진 몸을 쇼파 위에 간신히 걸쳐놓고, 놓쳤던 공중파 방송을 다시 보며 깔깔거리면서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고, "캬아~ 시원하다."라는 말을 할 때는 달콤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뜨거운 남태평양 해변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는 대신, 나는 출근을 선택했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옛 애인의 결혼 청첩장을 받은 서른 한 살 은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옥철에서 사람에 시달리던 은수는 그의 결혼식날의 일정으로 출근을 선택했다. 은수는 친한 친구 유희와 재인을 불러 마음을 달래려 하지만, 재인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에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선 본지 2주만에 비뇨기과 의사와 결혼하는 재인은 상대방 남자를 그저 타잔이나 닥터 배라고 부를 뿐이다. 그가 가방을 잘 들어주는지, 감자탕 집에서 고기를 얼마만큼의 크기로 발라주는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쓸쓸하게 돌아오는 길. 20대 후반에서 30대 직장인 싱글이라면 한번쯤 은수와 같은 '그 날'을 맞게 된다. 괜히 마음이 쌉쌀하고 세상이 진하게 느껴지는 날 말이다.

그래서 <달콤한 나의 도시> 상영일인 금요일 저녁에는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금요일이군요.(T.G.I.Friday)'를 외치며 달려나갈 만큼 혈기가 넘치지도 않고, 그저 빨리 쉬고 싶을뿐인 은수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일찍 들어가 목욕재계를 하고 드라마를 기다린다. 은수가 HelloTV의 <막돼먹은 영애씨>를 보며 본방사수를 외치듯, 우리는 <달콤한 나의 도시> 본방사수를 위해 금요일 저녁 약속은 잡지 않는다. 금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마치 영화 상영시간같은 그 시간 만큼은 <달콤한 나의 도시>와 함께 캔맥주를 즐길 수 있다.

친구 전화에 캔맥주, 그리고 HelloTV까지 있다면 오은수, 외롭지 않다.


-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227쪽.

정이현의 원작 소설이 가벼우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다면, 드라마는 감각적인 영상과 편집으로 원작을 뛰어넘는 매력을 발산한다. 결코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어서 핸드폰일지도 모르는, 생필품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문자들이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반짝거리며 떠오를 때 어쩔 수 없이 지어지는 미소가 있다. 가끔은 싸하게 마음이 아려오는 문자도 있다.

태오야... 태오야...


6살 어리지만 140억살 우주의 나이에서 보면 우린 동갑이라고 외치는 연하남 윤태오와 뻔한 스테레오타입인줄 알았는데 은근히 자상하고 배려많은 친환경 유기농 식품 업체 CEO 김영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오은수. 물론 은수는 예쁘고 화려한 싱글이지만 갑자기 재벌이 나타나서 애기라고 부르는 시츄에이숀이 아니라 좋다. 남자는 일단 능력이 많고 나이도 좀 있어야 된다고 말하는 재인이 된장녀처럼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좋고, 대기업을 때려치고 뮤지컬 배우의 길로 나선 유희가 무조건 성공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좋다. 그리고 동거에 대해서도 "만약 당신이 동거란 말에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어둡고 축축하기만 한 무엇이라면, 당신은 분명 동거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폐인들이 모인 방송 게시판에서는 드라마 제목을 줄여 '달나도'라고 부른다. 얼핏 들으면 '날 놔둬'라고 들리기도 한다. 'Leave me alone'이라고 중얼거리는 작고 하얀 고양이 스노우캣이 생각난다. 스노우캣처럼 혼자 놀기를 실천하는 사람들, 싱글(single)이라는 말은 더블이나 커플처럼 거북하지 않다. 매혹적인 S라인이 감싸고 있으니까. 그 S라인으로 다른 싱글을 감싸주는 것도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금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은수 섬에는 누가 찾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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