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TV 매거진/2009 09

[Talking about]트렌드 세터들의 수다-드라마 <스타일>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7. 10:25


드라마 스타일에
Style이 있을까?


‘엣지있게~’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SBS 특별 기획드라마 <스타일>이 화려한 캐스팅과 패션, 요리 등의 볼거리를 앞세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4각 로맨스와 패션에디터, 한식 셰프라는 직업군에 대한 현실감 떨어지는 묘사는 시청자들의 본상 사수의욕을 여지없이 방해한다. 드라마 덕에 요즘 "진짜 그래?"라는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는 패션에디터 심정희 씨와 정신우 셰프, 그리고 정석희 TV칼럼니스트가 드라마 <스타일>에 과연 ‘스타일’이 있는지 얘기 나눠봤다.


"착한 척, 약한 척 하는 여자... 도대체 언제적 얘기?"
정석희_패션에디터의 세계가 우리에게 부각된 것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에서부터다.서릿발 갈았던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를 잊을 수 없는데 우리나라 패션계에서는 이서정(이지아)처럼 1년 반 차 어시스턴트가 하늘같이 편집장에게 따박따박 대들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심정희_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어떤 잡지사에서도 총리와 세계적 셰프를 다르는 특집기사를 어시스턴트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 미션을 주기 전에 선배기자들이 먼저 디렉팅을 하고 바통을 이어받는 경우는 있지만 바로 섭외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아니, 아예 편집장과 독대하는 일 자체가 없다고 봐야 옳다
정석희_<커피프린스>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바리스타나 파티쉐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드라마는 오히려 누가 되는 것 같더라.
심정희_만약 스타일이라는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못 얻는다면 이서정 캐릭터 때문일 거다. 눈치 없고 마냥 착한 척만 하는 이서정을 보고 있으면 화가 절로 난다. 촬영현장에서 바람난 남자친구를 쫓아가지를 않나, 의상을 잃어버려 촬영 펑크를 내지 않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지만 일을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무책임하다. 나라면 그런 어시스턴트는 당장 해고! (웃음)

"별거 아닌 장면, 별거 일 수 있다!"
정신우_물론 모든 드라마에는 허구와 과장된 부분이 있다. 드라마를 보며 ‘아, 정말 저렇게 되면 좋겠어’ 하면서 위안을 얻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드라마는 ‘저건 말이 안 되지~’라는 말만 자꾸 나온다. 특히 기자와 셰프 라는 전문직에게 꼭 녹아있어야 할 에너지가 캐릭터들에게서 읽혀지지 않는다.
심정희_베스트셀러인 원작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글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긴 했겠지만 패션 에디터가 하는 일을 수박 겉핥기로 그려냈을 뿐이다
정석희_비닐백 조차 잇 백으로 보이게 하고 할머니스러운 힐을 청담동 바닥에 깔리게 만드는 게 바로 패션에디터 라는 박기자(김혜수)의 말이 정답 아닐까?
심정희_박기자 대사 중에 명대사가 많다. 드레스 두 벌 중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묻는 장면에서 둘 다 좋다는 이서정에게 ‘어떻게 와인과 퍼플인데 같을 수 있느냐’ ‘패션을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라’ 와 같은 대사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반면 청담동명품 매장 앞에서 한정판 백을 바라보다 쇼윈도에 립스틱으로 하트를 그리는 이서정의 행동은 그야말로 손발이 오글거린다. 또 한 가지, 고객을 설득하기보다 ‘저 지금 이거 못하면 죽어요~’하며 사정하는 모습도 치사하고 비굴해 보였다.
정신우_누군가의 도움으로 늘 일을 해결하는 이서정이 너무 밉상이다. 인맥을 이용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이겠지만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일을 못 해낸다는 건 직업의식의 결여가 아닌가. 시청자들이 이 분야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허술하리라 오해할 거 같다.
정석희_국내 최초로 ‘마크로비오틱’을 요리하는 한식 셰프로서의 서우진(류시원)은 어떤가?
정신우_이쪽도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할 거면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채워 줄 만한 요리를 보여 줘야 하는데 볼거리라곤 없다. 한 마디로 <스타일>안에 스타일이 없는 식이다. ‘마크로비오틱’은 음양의 이론을 바탕으로 푸드 밸런스를 맞춘 둉양의 자연건강식인데 음식은 동양식, 옷은 양식 쉐프 복장이니 뭔가 어색하다. 제대로 맞춤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조언자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심정희_그러게, 예약을 안 받으면 재료 준비를 어떻게 하지? 모든 재료를 다 갖춰 놓니? 주부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는데? 안 망하는 게 이상하다. 하긴 돈은 많을 테니까 뭐.
정신우_그런 식의 옥에 티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와인 마시는 장면을 보며 ‘편집장 급이면 무슨 와인 먹을까?’ 유심히 살펴봤다. 꽤 고가의 와인이 디스플레이 됐던 걸로 기억되는데 사실 내가 아는 편집장들 중에 그렇게 까지 비싼 와인 먹는 사람은 없다.
심정희_내가 아는 편집장 중에 ‘마쎄라티’처럼 비싼 차 타는 사람은 없다.(일동 웃음)
정신우_가만 보면 박기자는 3억 정도의 연봉, 서우진은 한 달에 3천 만원씩 가져가는 사장이어야지 가능할 것 같다. 근데 그런 연봉은 불가능하다.(웃음)

"일에 대한 열정 녹여낸 <스타일> 되었으면"
정석희_이서정, 박기자, 서우진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면?
심정희_패션 에디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사실 일을 못해 상사에게 혼나는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다. 다른 잡지와의 비교, 이를테면 경쟁지에서 서우진 쉐프와 같은 인물응ㄹ 섭외했는데 나는 실패했을 때 느껴지는 자괴감이 가장 힘들다. 박기자가 부딪치는 윗선과의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 부조리 같은 건 어느 분야에서나 다 존재한다. <스타일>이 그런 부분만큼은 잘 표현하고 있다. ‘내 기사가 나중에 냄비받침으로 쓰이더라도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내자’ 라는 소명의식을 가져 주었으면!
정신우_요리사가 화제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건 요리하는 사람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셰프들이 모두 서우진처럼 ‘럭셔리’하게 일한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오너쉐프가 되려면 설거지부터 시작해 기본기를 수년간 쌓아야 하고 일에 대한 마르지 않는 열정도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디터 정주연. 진행 정석희 TV칼럼니스트. 포토 Ag Studio. 헤어메이크업 정현정파라팜. 장소협찬 루즈키친.사진제공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