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TV 매거진/2010 04
[Special Interview] 백지연 앵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12. 14:29
침묵하는 ‘겨울’후에
만개하는 ‘봄’이 온다
얼마 전 드라마틱한 골을 성공시킨 박지성 선수를 향해 언론은 그의 인내가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켰다고 평했다.
세상은 이렇듯 반비례의 진리를 가진 듯하다. 준비 없이 소리 내어 말하면
세상의 반응은 차갑고, 준비하며 침묵하면 세상은 환호로 시끄럽다.
침묵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승리자가 아닐까.
최근 백지연 앵커는 그러한 삶의 지혜를 가득 담은 책 <뜨거운 침묵>을 들고 또 우리 가까이 다가왔다.
Q 현재 tVN <백지연의 피플INSIDE>를 진행하는 바쁜 일정에서도 책을 내신
게 놀랍습니다.
A 저는 방송인이지만 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침묵’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정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담금질을 성실하게
해야 하다는 뜻이에요. 준비 없이 섣불리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본인에게
상처가 될 뿐이에요. 하지만 자기 자신과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한 후에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한다면 삶이 달라질 겁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전부터 계속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거라 사실 쓰는
기간 자체는 길지 않았어요.
Q “다시 20대로 가라면 가지 않을래요” 하신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책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20대의 자만이 방종이었고 20대의 불안과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고 깨달은 것도
많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A 전 워낙 범생이 같이 20대를 보낸 사람이었어요. 20대로 다시 갈 거냐는는
질문은 마치 고3 수험생활을 다시 할 거냐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전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그리고 지금의 나이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웃음). 만약 좀 더 디테일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의 경험과 지혜를 담은 정신 그대로 몸만 20대로
가고는 싶네요.
Q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얕은 처세술을 시끄럽게 가르치는 중에 백지연씨의
책은 진정으로 ‘나’를 알고 ‘나’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그만큼 깊이가 있고 또한 독자들의 삶을 진짜로 변화시키는 것
같아요.
A 자기 계발서는 물론 좋은 책이긴 하지만 얄팍한 지식으로 처세를 논하는
책은 멀리하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전 가장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 책을 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생활에서 밑바닥의 쓴맛을
보지 않은 이가 쓴 직장 처세론이 아무리 매끄러운 문장으로 그럴 듯하게
쓰여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실제 그 사람의 경험한 것이라면
비록 문장이 투박하더라도 진정성이 담겨져 있기에 그 책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Q 오늘 사인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방송이나 지면으로만 만나던 팬 분들을 직접 만나 소통한다는 건 짜릿한
기쁨입니다. 짧은 시간인데도 저와의 소통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어 행복해요.
팬 사인회 때문에 바쁘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은 평상시와는 달랐다. 팬 분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데 굳이 딱딱한 정장을 입고 싶지 않았다며 옷차림부터 캐주얼했는
데, 발걸음도 그만큼 가볍다. 오늘 팬들은 방송에서 보지 못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
견할 듯했다. 게다가 자신이 아프게 얻은 삶의 지혜를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누는 것
도 귀한데, 책의 수익금은 전액 불우아동들을 위해 쓴다고 한다. 창밖을 보았다. 어느
새 담금질하는 침묵의 ‘겨울’ 후에 아름다운 ‘봄’이 찾아온 것이다. Editor 김서희 편집장
“거기 움츠러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오기로 책을 펼쳤다. 뜨거움과 침묵, 어느 하나도 나와 가깝지 않은 단어들이니까.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지난 1년을 정신 없이 살아온 나에게 ‘침묵’이란 단어는 낯설었다. 칼을 갈
고 있는 경쟁자들 틈에서 한 마디라도 더해 주목 받고 싶었다.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모아놓고 내 것인 양 읊다 보면 어느새 내가 승리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말’을
구사하기는커녕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애착도, 개성도 잃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뜨거움은? 내 안에 열정은 존재하는 걸까. 물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선택한 진로이지만, 그건 작고도 작았다. 남들처럼 사회를 바꾸겠다는 열정이
불타오르는 것도, 내 길은 이것뿐이라는 굳건한 결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2010년 한국의 보통 사회초년생처럼, 단지 한 없이 불안할 뿐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
의 막막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럴 때 길잡이가 되어야 할 멘토는 분명 내 안에 있을 텐데 어
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런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
람이 어딨겠는가. 그런데도 “생각대로 이루어진다”, “현재에 충실하자”, “긍정이 힘이다” 같은 가
르침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주지 못하고 늘 일회성에 그치는 이유는 뭘까.
‘뜨거운 침묵’을 읽은 뒤 그간 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내면의 소리와 외침을 무시하고 외부환경에
휩쓸리며 해답을 갈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20대의 고민 중 대다수가 지나고 보니
부질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중 읽는 순간 가슴이 뻥 뚫렸던 몇 가지 예를 소개하고 싶다. ‘난 왜
저 사람보다 못났을까?’ 라는 자괴감에 쌓일 때는 ‘저 사람은 내가 6시간 잘 때 5시간 잤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나만 혼자야’ 라는 외로움에 쌓일 때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것을 상기하며
나를 되돌아 볼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상처는 ‘내가 받지 않으면 상처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현재는 패배자 일지라도, 지금이 미래의 Authentic winner(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소중
한 준비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절차탁마할 것. 등이다.
사람은 누구나 영향을 미치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치를 하고,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강
의를 하고, 책을 써낸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을 때 독선과 아집을 통해서 ‘이것만 옳다’고 하다가
새로운 권력을 만드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데 백지연씨의 경우는 영향력을 미치면서 함께 더
바람직하고 더 나은 곳으로 나가려는 노력을 계속 보여주기 때문에, 그러한 실망감을 주지 않고,
그래서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아직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행복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며 인격은 학식만 있다고 갖춰지는 게 아니라는 말, 너는 할 수 있다는 말. 사실은 간절히
믿고 싶지만 상실감이 두려워 그저 웃고 넘기는 말들.
저자가 수많은 인터뷰이들과 스스로의 삶을 통해 몸소 입증한 것이기에 ‘정말 그렇구나’ 라고 공
감하며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면서 오히려 내면소통을 게을리한 나의 사고는 좁고 편협해져 내게 엄청난
괴로움을 주었다. 그 즈음 이 책이 발간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저서들
중 가장 좋다. 한층 설득력있고 깊어진 문장들이 마음의 불을 댕겼다. 어떻게 완성해 나가는가가
더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여러분들에게도 ‘뜨거운 침묵’이 움츠러든 어깨를 펴주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