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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TV 매거진/2009 10

[Column]배우의 평가 잣대가 되고 있는 가십거리



배우의 평가 잣대가 되고 있는 가십거리

진정한 명배우는 몇 킬로그램?



무려 20킬로 감량! 모 다이어트 회사의 광고 카피가 아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 루게릭 환자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의 살인적인 감량을 말하는 것이다.
<내 사랑 내 곁에>박진표 감독은 배우 김명민의 감량보다 연기력에 우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어느 순간 매스컴과 대중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더 많이 열광하고 있다.
배우도 배우이기전에 사람이기에 치명적으로 위험한 고무줄 몸무게로 인해 위험해질 건강은 정녕 연기에 대한 뛰어난 헌신이란 타이틀 아래로 모른척 해도 되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배우들의 연기력의 평가 잣대가 되고 있는 고무줄 몸무게에 대해 정석희 TV칼럼니스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해보았다.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 지을 당신입니다.’



연기자로 한창 꽃 피울 나이에 여배우 장진영은 자신의 영화 <국화꽃 향기>의 카피에 버금갈 순애보적인 사랑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영화처럼 살다 떠난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대표작들이 장례 일정 내내 전파를 탔다.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화면 속의 꽃같이 어여쁜 그녀를 보고 있자니 <국화꽃 향기> 때의 일화가 문득 떠올랐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비련의 여주인공 희재 역에 캐스팅되자 즉시 다이어트에 돌입, 3개월 만에 7kg을 감량했던 장진영.
그러나 정작 영화가 개봉되자 그녀에게 들려온 소리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어째서 위암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냐, 진짜 체중 줄인 거 맞느냐’는 일부 영화팬들의 지적이 줄을 이었던 것. 지금 와 돌이켜보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말기 암 환자 역이라 하여 피골이 상접할 지경으로 살을 뺐어야 옳았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얼토당토않은 지적들은 어쩌면 영화계 스스로의 책임일 수도 있다.
작품을 앞두고 살인적인 체중조절을 감행한 배우들이 허다하다보니 수척하다 싶을 정도의 감량은 성에 차지도 않게 된 것이 아니겠나. 설경구의 경우 <공공의 적>에서는 14kg을 늘리고 <오아시스>에서는 19kg을 줄이는 식으로 작품마다 늘리고 줄이고를 반복했다. 그런가 하면 유지태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위해 23kg을 늘렸고 <남극일기>를 위해서는 20kg을 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00kg 감량!’이라는 홍보 기사가 쏟아지면 대중은 과연 프로답다며 찬사를 보내곤 했으니까.
인위적으로 단시일 내에 살을 찌웠다 뺐다 하는 게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는 삼척동자라도 알겠거늘 고무줄 몸무게가 명배우의 필수조건이 되었으니 기막힌 일이지 않나.

어디 단지 몸무게뿐이겠나. 생생한 캐릭터 묘사를 위해 배우가 어디까지 현실적이어야 옳은지 때론 혼란스럽다. 얼마 전 토크쇼에 출연한 연기자 이휘향은 KBS <구미호외전> 출연 당시 좀 더 현실감 있는 연기를 끌어내고자 돼지 생간을 씹었는가 하면, SBS <천국의 계단>에서는 극중 의붓딸(박신혜)의 따귀를 실제로 감정을 실어 때렸다고 털어놓았다. 진짜 계모라도 된 양 미운 마음이 들어 저절로 손이 나가더란다.실제로 죽자고 때렸으니 맞은 쪽은 서러웠을 게 아닌가. 따라서 눈물도 절로 쏟아졌을 테고. 이게 도대체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모를 일이다. ‘연기’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일’ 이거늘 언제부터인가 표현 정도로는 대중이든 연기자든 만족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난감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김명민 주연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스틸컷 한 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루게릭병 환자 역을 맡은 김명민은 촬영기간 동안 실제 환자들의 병 진행 속도에 맞춰 체중을 감량했다고 하는데, 그의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 : 배우가 극중 인물에게 완전히 몰입하여 연기하는 것을 뜻함. 배우 자신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극중 인물 자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를 향한 열정에 감탄해야 옳겠지만 그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걸 어쩌랴. 쇠약해져 가는 주인공이 되고자 석 달이 넘는 시간을 촬영지 숙소에서 햇빛을 차단한 채 홀로 지내며 곡기를 아예 끊었는가 하면, 촬영이 시작된 후엔 가족과 연락을 일절 단절해 가며 외로움에 사무친 루게릭병 환자에 몰입했다 하니 그의 심신이 입은 타격이 오죽 크겠나.
다큐멘터리 를 통해 들려준 그의 인생관과 연기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배역에 몰두하는 성실함과 진지함이 존경스러운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 <소름>에 함께 출연했던 장진영이 생각나서일까. 그의 신작 <내사랑 내 곁에>를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는 어렵지 싶다.



editor 정석희 TV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