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를 보고 왔습니다. 표가 없어서 밤 12시 반에 상영되는 영화를 봤습니다. 새벽 2시반, 영화가 끝나고 상암 CGV를 나서는데, 뭔가 숨이 턱-하고 막혀 옵니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한 판 슬픈 굿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 하나의 환상을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내 아들은 이런 사람이고, 내 친구들은 이런 사람이며, 세상은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환상은, 내 환상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꾸는 환상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엄마와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기 자신은 이런 사람이고, 엄마는 이런 엄마고, 아들은 이런 아들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서 세상을 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실, 그 환상은 아들과 엄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녜요.
형사들도, 마을 사람들도, 임신을 꿈꾸는 여성도, 살해당한 아이의 친구들도,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까지, 그들은 한번도 자신들이 만든 환상을 의심하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냉정하면서도, 자기들이 품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 환상에 그나마 질문을 던지는 것이, 동네 양아치 백수 진태뿐이었지요.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더 리더'(헬로TV -> VOD -> 프리미엄 영화관)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어린 소녀들의 합창을 들으면서도 눈물을 흘릴줄 아는 그녀는, 자신이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떤 짓을 했는 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겠지요. 예,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서,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숨기면서 ... 그래서 어떤 진실이 날 것으로 드러날 때는, 그것은, 참 매섭게 아픈 것들로 자신을 찔러오기 마련입니다.
맞아요. 그건 사고입니다. 인생에서 가끔씩, 끔찍하게 부딪히게 되는 사건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당해야 하는지,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들. 영화속 엄마가 부딪히게 되는 광기도,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날 살인마로 법정에 선 모습을 보게되는 '더 리더'의 남자 주인공도, 모두... 차에 치인 사람처럼 맞이하게 되는, 그런 사고들.
자신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복잡한 세상의 이면. 겨우겨우 버텨나가고 있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또다시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어두운 진실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야만 합니다. 아무리 죽고 싶은 현실이라고 해도, 쉽게 삶의 끈을 놓아버릴 수는 없어요. 아니, 내가 어떤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라고 믿고 있었던 환상을, 그 관계를 부정해 버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비록 질리도록 악독하고, 부도덕한 길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 그저 울먹일 수 밖에 없는 길이라고 해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를수 밖에 없다고 해도... 나는, 살아야만 합니다. 예, 나는, 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 삶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고 믿었던 타인에게, 나와의 관계를 부정당하는 순간입니다. '더 리더'이 여자 주인공이 형무소 밖으로 나가기를 포기했던 것은, 밖에 나가는 순간 나를 지탱해줬던 관계는 모두 끝이라는 그런 절망이 아니었을까요?
... 그렇지만, '마더'의 엄마는 그래도 아들이 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지요... 그것이 정말, 어떤 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람의 환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해주는 환상을 알게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용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저 그냥...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을 알고 받아들여주는 거지요.
현실에서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대로 두고, 슬프지만,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영화를 보면서 내내, 봉준호 감독이 참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은, 정말,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나를 몰고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정말,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 엄마와 아들. 그리고 그를 빛내준 것은 김혜자의 연기입니다.
제 친구는 벌써, 다음 언제 또 보러갈지 날짜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그 먹먹함을, 다시 한번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요. 이 땅에서 태어나 한 엄마의 아들인 사람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끔찍한 현실임에도, 내 어머니도 어쩌면, 저러고도 남으셨을 거란 것을 알기에.
아직 안보신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립니다. 조금 쓸쓸한 이야기를 맛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더 리더' 영화와 소설을 모두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 다, 여주인공, 김혜자와 케이트 윈슬렛의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들이군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 하나의 환상을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내 아들은 이런 사람이고, 내 친구들은 이런 사람이며, 세상은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환상은, 내 환상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꾸는 환상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엄마와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기 자신은 이런 사람이고, 엄마는 이런 엄마고, 아들은 이런 아들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서 세상을 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실, 그 환상은 아들과 엄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녜요.
형사들도, 마을 사람들도, 임신을 꿈꾸는 여성도, 살해당한 아이의 친구들도,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까지, 그들은 한번도 자신들이 만든 환상을 의심하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냉정하면서도, 자기들이 품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 환상에 그나마 질문을 던지는 것이, 동네 양아치 백수 진태뿐이었지요.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더 리더'(헬로TV -> VOD -> 프리미엄 영화관)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어린 소녀들의 합창을 들으면서도 눈물을 흘릴줄 아는 그녀는, 자신이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떤 짓을 했는 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겠지요. 예,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서,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숨기면서 ... 그래서 어떤 진실이 날 것으로 드러날 때는, 그것은, 참 매섭게 아픈 것들로 자신을 찔러오기 마련입니다.
맞아요. 그건 사고입니다. 인생에서 가끔씩, 끔찍하게 부딪히게 되는 사건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당해야 하는지,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들. 영화속 엄마가 부딪히게 되는 광기도,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날 살인마로 법정에 선 모습을 보게되는 '더 리더'의 남자 주인공도, 모두... 차에 치인 사람처럼 맞이하게 되는, 그런 사고들.
자신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복잡한 세상의 이면. 겨우겨우 버텨나가고 있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또다시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어두운 진실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야만 합니다. 아무리 죽고 싶은 현실이라고 해도, 쉽게 삶의 끈을 놓아버릴 수는 없어요. 아니, 내가 어떤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라고 믿고 있었던 환상을, 그 관계를 부정해 버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비록 질리도록 악독하고, 부도덕한 길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 그저 울먹일 수 밖에 없는 길이라고 해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를수 밖에 없다고 해도... 나는, 살아야만 합니다. 예, 나는, 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 삶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고 믿었던 타인에게, 나와의 관계를 부정당하는 순간입니다. '더 리더'이 여자 주인공이 형무소 밖으로 나가기를 포기했던 것은, 밖에 나가는 순간 나를 지탱해줬던 관계는 모두 끝이라는 그런 절망이 아니었을까요?
... 그렇지만, '마더'의 엄마는 그래도 아들이 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지요... 그것이 정말, 어떤 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람의 환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해주는 환상을 알게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용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저 그냥...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을 알고 받아들여주는 거지요.
현실에서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대로 두고, 슬프지만,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영화를 보면서 내내, 봉준호 감독이 참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은, 정말,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나를 몰고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정말,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 엄마와 아들. 그리고 그를 빛내준 것은 김혜자의 연기입니다.
제 친구는 벌써, 다음 언제 또 보러갈지 날짜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그 먹먹함을, 다시 한번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요. 이 땅에서 태어나 한 엄마의 아들인 사람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끔찍한 현실임에도, 내 어머니도 어쩌면, 저러고도 남으셨을 거란 것을 알기에.
아직 안보신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립니다. 조금 쓸쓸한 이야기를 맛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더 리더' 영화와 소설을 모두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 다, 여주인공, 김혜자와 케이트 윈슬렛의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들이군요.
왜일까? 왜 예전에는 아름답던 것들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이레, p43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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