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있었던 '트랜스포머2' 시사회를 둘러싸고 아직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최측이 한국 관객을 우습게 봤다느니, '트랜스포머1'이 가장 흥행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을 잊었다느니, 배우들이 예의가 없었다느니, 어떻게 사람을 그 빗속에 몇시간이나 세워두고도, 겨우 5분만 레드카펫 행사하고 내려갈 수 있냐느니...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지만, 그날 시사회 진행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 여기서 그날 시사회 자체의 잘잘못에 대해 따질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리스크가 발생한 다음의 대처 방법입니다. 까놓고 말해 이런 리스크 발생은, 누구라도, 어느 회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리스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항상 '리스크(위험)'에 둘러쌓여 있으며, 작은 선택 하나에도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를 감안하고 선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데이비드 아프카는 작년에 출간한 「Risk Intelligence」책을 통해 앞으로는 위험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위험 IQ(Risk Intelligence Quotient)’가 더 중요하다고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위험 IQ고 뭐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위기 대처 매뉴얼을 작성하긴 하지만... 그거야 정말 큰 위기에나 한정된 일이구요.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비가 왔다던가- 그로 인해 기자들이 다 취재 보이콧을 해버렸다던가-하는 상황에 대해선, 제대로된 매뉴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문제를 그저 묻어두고, 모든 것을 부인하며 그저 '보이지 않게 되길' 바라는 경우입니다.
영화 과속스캔들(헬로TV -> VOD -> 프리미엄 영화관 -> 과속스캔들)에서 남현수(차태현 분)가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기자회견을 통해서 '자신의 딸임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 사실, 정치인들의 기자회견의 대부분이 이렇지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할 것 같은 일들은, 일단 부인하고 보는 것.
...하지만 이런 방법이 과연, 지금 이 세상에서도 유용한 방법일까요?
이미 세상은 단순히 부인하고 묻어버린다고 없던 일이 되는 세상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방향이 아닌, 인터넷을 통한 양방향적 의사소통이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옛날처럼, 신문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갔다고 해서 홍보실에서 전화하고 뭐하고 하면서 기사를 빼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하나 확인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 잘못된 일이 있었는가, 아닌가"입니다. 물론 실제로 있었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리스크는 발생합니다. 위기는 꼭 진짜로 있는 사실만 가지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도 기억나는 '삼양라면 공업용 우지' 파문이나 '쓰레기 만두 파동'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쉬울 듯 합니다.
트랜스포머2 시사회의 경우, 가끔 악의적 과장과 왜곡된 메세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코 '없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일단 위기를 불러온 '사건'에 대해 파악이 되었다면,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일입니다. 보통 TACSIN(Team, Action, Communication, Story, Intelligence, Negotiation)이라 부르는 체계입니다. 맨 처음, 위기 관리를 위해 좋은 '팀(team)'을 구성할 것.
...그리고 두 번째,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트랜스포머2 시사회를 보자면 원인은 몇가지로 나뉩니다. 날씨, 갑작스러운 방한 일정, 여유가 전혀 없었던 스케쥴. 그리고 당일날 불거졌던 것은 취재진과의 불화, 현장 담당자의 판단 미스,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 제공 부족, 영화 시작 시간에 대한 안내 부족 등
실은 여기에서 몇가지 제대로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만약 당일날 배우들이 왜 늦는지 자세하게 언급이 되었다면, 비가 오는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레드카펫 행사 장소를 바꾸거나 취소했다면, 아니면 비맞으며 추위를 타는 사람을 위한 핫팩이라도 제공했다면... 이렇게까지 악평에 시달리진 않았을 텐데...
세번째는 내/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입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어떤 '이야기(story)'를 전달할 것인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어떤 '정보(intelligence)'를 모아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수의 이해 관계자들과 어떻게 '협상(negotiation)'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영화 과속스캔들에선 처음에 '딸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평화를 찾지만, 딸과 손자를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그 스캔들을 파헤쳐내려는 연예기자의 집요한 작업 속에, 스캔들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순간, 오히려 영화를 해피엔딩을 향해 가게 됩니다.
사실 영화 트랜스포머2 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팀을 짜고, 일단 필요한 조치(?)를 하며, 서로가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토대로 행동을 하죠. 그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상...도 하구요. :) ... (더 말 못하는 이 갑갑한 마음 헤아려 주소서...)
하지만 영화속에선 쉬운 일이,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러니까, 어떤 리스크를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거지요. 어쩌면 영화 자체는 재미있으니, 어차피 흥행에는 성공할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건 영화 하나...로만 볼 때 그런거고, 장기적으론 악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랍니다.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 밖에 없습니다.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리스크를 둘러싼 이슈들을 선점함으로써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
예를 들어 이번 시사회의 경우, 관객들이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합니다. "잘못된 진행에 대해 주최측은 사과하라" 입니다. 그렇다면 사과하면 됩니다. 괜히 애먼 마이클 베이 감독의 사과문으로 돌려서 막는 것이 아니라, 그날 진행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심을 보여주면 됩니다.
지금도 많은 팬들은, 그날 그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자들의 악플성 기사에 맞서 트랜스포머2 출연진과 영화를 스스로 나서서 방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트랜스포머2: 기자의 역습'에 팬들이 오토봇이 되어 싸우고 있다구요. 이런 팬들을 위해서라도, 행사 진행 주최측은 뭔가 행동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팬들을 위한 협상이란 말입니다.
* 현재 떠돌고 있는 풍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WILDBLAST님의 글을 읽어봐 주세요.
- 2009/06/15 트랜스포머팀을 향한 비방, 과연 정당한가 -①
- 2009/06/15 트랜스포머팀을 향한 비방, 과연 정당한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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