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다시 보았습니다. 마침 헬로tv에서 무료 vod로 서비스해주고 있더군요. 이전에도 두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인가 봅니다. 물론 어떤 걸작이라고 부르기엔 모자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내용은 평이하고, 이젠 다른 영화들에서 너무 많이 변주된 일반인과 유명인의 연애 이야기가 되버렸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여전히 예쁘지만... 그냥 보기엔, 그저그런 옛날 상업 영화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제겐 볼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공주님과 일반인의 사랑이야기로 보이다가, 두번째는 한 남자의 올드한 연애 이야기로 읽히다가, 그리고 이번엔, 오드리 헵번- 아니, 영화속 그 공주님의 버킷 리스트 실현기-로 보이더라구요. 예, 버킷 리스트, 살면서 꼭 해보고만 싶었던 것들을 실현한 하루-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내빈과 인사중 신발을 몰래 벗었던 공주님,
의례와 격식,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들만 하면서 살아가던 공주님의 일상은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할 일들도 가득찬 우리네 삶을 닮았습니다.
약기운이 도는 줄도 모르고 몰래 탈주한 공주님, 그 공주님이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약을 먹기전 의사는 말합니다. "최선책은 잠시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탈주한 다음날, 공주님은 머리를 자르고, 광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광장에 공주를 몰래 따라온 신문기자에게 말하죠.
"온종일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어요. 머리를 깍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노상 카페에 앉아보고, 쇼핑도 하고, 빗속을 거닐고..."
영화속 오드리 헵번의 버킷 리스트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자유롭게, 남이 하라는 대로가 아닌, 온종일 좋아하는 것만 해보는 것. 처음으로 여러가지 것들을 겪어 보는 것. 남들이 그렇게 되어라-라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쯤은 해보는 것.
...누구라도 한번쯤은 꿈꿔봤을, 그런 하루.
버킷 리스트, 버리고 싶지 않은 꿈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카터로 분한 모건 프리먼이, 암에 걸려 입원한 병원에서 적어내려가는 것도, 바로 그 버킷 리스트입니다.
대학신입생때 철학교수님이 이것을 숙제로 낸 적이 있었지. 이걸 버킷 리스트라고 불렀는데 말이오, 인생에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다 적어보라고 하셨지. 그땐 다들 떼돈을 번다던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던지, 알잖소, 젊은 애들 소원들, 그런 것들을 적었는데... 그걸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소
그러자 에드워드로 분한 잭 니콜슨이 그 버킷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읽어내려가다 슬쩍 한줄 더 써넣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그러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들은, 그 리스트에 적힌 꿈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캔커피통에 포장되어 히말라야에 묻히게(?) 되죠. 그들은 아마, 어쩌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를 지금 우리답게 살아있게 해주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버리고 싶지 않은 꿈. 언제가는 꼭 해보기를 원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들을 하나하나 비워가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일지도 모르니까요.
...누구도 6시에 일어나 9시까지 출근해 7시에 퇴근하며 12시에 잠드는 삶, 한달 200만원을 받아서 월세 40만원을 내고 관리비 10만원에 수도료 15천원, 인터넷 요금 3만원, 휴대폰 요금 5만원, 대출 이자 20만원을 내기 위해 살아가지는 않을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과 버킷 리스트의 두 주인공들은, 참 행복한 꿈을 꿨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긴,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니 영화이긴 하겠지만...
지금, 소중한 것을 위해 살아가세요
물론 말이 쉽지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여행을 떠났다간 당장 회사에서 잘려버릴 거에요. 지금 행복하겠다고 징징댔다간 나중에 백수로 평생 늙어죽을 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것에는 언제나, 균형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라-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참아라-의 사이에서 언제나 방황하는 것,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버킷 리스트에는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그냥 해봤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정말 해보고 싶다'라는 간절함. 어쩌면 버킷 리스트는 '희망'이라 부르는 막막한 이름의 구체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이 가지고 있던 버킷 리스트는 매우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헬로TV > VOD > 영화 > 프리미엄 영화관 > 슬럼독 밀리어네어)
단 하나의 버킷 리스트, "라티카를 만나고 싶다는 것"
▲ 그리고는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요...
굉장히 많은 영화와 책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라는 질문에 늘상 부딪히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 꿈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엔 해야하고 맡아야만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나 말이 쉽지 직접 하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내일 출근하다가 차에 치여 죽는 일이 생겨도, 아는 오늘 지금 내일까지 낼 보고서를 끝내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쩌면 좋을까요?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 그냥 꿈은 꿈이라 부르고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야만 할까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참고할 수 있을 이야기는 하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강의에서, 랜디 포시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입니다.
"자, 오늘 강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에 관해서였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헤드 페이크는 찾았냈습니까?" 나는 말을 멈추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꿈을 달성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 줄 것이고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 랜디 포시, 마지막 강의, p 281
자-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입니까? 이런이런, 너무 뻔한 질문으로 마무리하려고 하는 군요.. :) 살펴보니, 2006년쯤에 작성한 제 버킷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것이었더군요. 지금까지, 까맣게 까먹고 있었습니다.
1. 세계 일주 (이건 가능하면 40세 전에, 예산 약 2천만원...)
2. 일본어와 영어, 그 나라 중2 수준 이상으로 익히기
3. 세계 5개 대륙 21개 이상 나라의 친구를 사귀기
4. 악기 하나 제대로 마스터 해서, 천명이상 앞에서 공연하기 (예전에는 10만명 이었는데.. 많이 줄었다.)
5. 잘하는 음식 꼭 한가지는 만들기(라면 같은 인스턴트 종류 제외. 현재 면류와 오믈렛 종류가 물망에 올라있음.)
6. 결혼하기 (죽기 전에 한번 해보겠지? -_-a)
7. 학원, 이라고 하긴 뭐하고, 문화예술활동을 꿈꾸는 청춘들의 아지트, 하자 센터 같은 곳을 만들거나 선생으로 들어가서 1년이상 일해보기.
8. 일본에서 어학연수 1년동안 하기
9. 쿠바에 가서 살사 배우기(또는 그 핑계대고 6개월에서 1년정도 놀다가 오기)
10. 마콘도 같은 살사바 운영, DJ 믹싱하는 것 배우기
11. 영어 어학연수 1년동안 하기
12. 일본 열도 종단 여행
13. 중국과 러시아 대륙 종단 여행
14. 남극과 북극과 사하라 사막과 아마존 보기
15. 예쁜 이층집 지어서 사는 것
16. 1년동안 열심히 오락만 해보기, 그리고 그 내용 정리하기
17. 동남아에서 6개월정도 놀면서 서핑 배우기
18. 스노우보드 마스터하기
19.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진 한 장 남기기
자, 다른 분들의 버킷 리스트는, 정말 어떤 것인가요? ^^
궁금해요.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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