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과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의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무한도전> 여름방학 특집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시리즈가 3부작으로 방영되었다. 방영 전부터 서울역과 한강에서 이들의 모습을 찍은 시청자 UCC 사진들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배신과 모함, 무한이기주의의 삼합(三合)이라는 예고편이 있었다. 이 예고편만으로도 편집에 들인 공과 만듦새를 짐작할 수 있었고 많은 시청자들이 돈가방 시리즈를 기다렸다.
1. 무한도전은 삼선짬뽕?
6월 21일 방영된 1부는 영화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감각적인 빠른 편집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서울 어딘가로 급박하게 향하고 있는 장면들이 교차편집되다가 다시 뒤로 빠르게 돌아간다. 이전까지의 무한도전 편집과는 상당히 다른 실험적인 편집이다.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는 초반부터 영화의 포맷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무한도전은 지금까지 여러가지 매체와의 결합과 장르적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해 왔다. 지난 무인도 특집에서는 미국드라마 'Lost'의 내용을 차용해 시작했고, '섹스 앤 더 시티'를 비틀어 '썩소 앤 더 시티'로 패션과 된장남에 대해 보여주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우리 미팅했어요'에서는 케이블의 무한걸스 팀과 함께 요즘 가장 인기많은 MBC 일밤의 '우리 결혼했어요'와 연애 버라이어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무한도전의 차용은 단순히 그 장르적 문법에 충실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특유의 패러디로 이어진다. '우리 미팅했어요'에서도 '우리 결혼했어요'식의 멤버 인터뷰에, 이들이 게임을 진행하는 세트는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양쪽에 늘어선 화환에 짝짓기 방식과 실패한 멤버가 '질질질' 끌려가는 것까지 충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애 버라이어티에 나가지 못했던, 나올 수 없을 법한 멤버들도 그들만의 코믹하고 화려한 장기자랑을 보여주며 웃음이 배가된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 특집에서 태릉 선수촌을 찾아가는 것이나, 이산 특집에서 이산 촬영현장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조역으로 출연하는 등 다양한 매체와의 결합도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장르적 실험과 매체적 결합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본부장의 금일봉 300만원이 담긴 가방을 목욕탕에서 찾고, 서울역에서 비밀번호를 받아 가방을 열고, 8시까지 MBC 로비로 가져가는 사람이 300만원의 주인공이 된다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의 미션이지만 이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시작 부분에서 MBC 대기실에 모여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은 검은색의 양복을 입고 있다. 멤버들은 왜 이런 것을 입고 오라고 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검은색의 양복과 검은 하드케이스의 서류 가방부터 007 시리즈의 클리셰를 보여주지만 실제 가방의 비밀번호가 007이었음이 밝혀질 때 이는 클리셰를 넘어선 웃음을 준다.
2. 무한도전에 놈놈놈이 녹아들었다
본부장의 메시지를 듣고서 다들 밖으로 뛰어나갈 때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의 OST인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s underst'이 흐른다. 이 곡은 원래 50년대 Bennie Benjamin이 불렀지만, Nina Simone이 리듬앤 블루스로 다시 불렀고, 이후에 The Animals가 전형적인 60년대 록스타일로 불렀다. 그리고 Santa Esmeralda가 라틴적인 요소를 살린 디스코풍으로 리메이크했다. 리듬앤블루스에서 록으로 그리고 디스코풍으로 다채롭게 변주되던 음악처럼, Santa Esmeralda의 음악도 영화와 무한도전 속에서도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놈놈놈>의 말을 타고 추격하는 장면에서 이 곡은 말발굽의 소리처럼 비트있는 박자를 보여주고 기타 선율로 서부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 사실 이 음악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에서 루시 류와 우마 서먼이 결투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눈이 내리는 일본식 정원에서 하얀 기모노를 입은 오렌 이시와 이소룡식의 노란 트레이닝 복을 입은 브라이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 하얀 눈이 고요하게 쌓인 정원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두 사람, 이때 박수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시작하는 이 곡이 등장하며 그들의 결투에 속도감이 붙는다. 즉 <킬 빌>에서는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쓰였고, <놈놈놈>에서는 결투가 시작되어 대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에서는 본격적으로 돈가방에 대한 추격을 시작하면서 각 멤버들에게 캐릭터가 부여될 때 이 곡이 쓰인다. 영화 예고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적인 추격장면과 정지 화면의 편집으로 각 멤버들의 정지화면 위에 좋은놈, 나쁜놈들의 이름이 붙여진다.
무한도전은 영화 <놈놈놈>을 돈가방 시리즈의 큰 틀로 잡고 각 멤버에 캐릭터를 부여한다. 유재석-좋은놈, 박명수-나쁜놈, 정형돈-어색한놈, 전진-굴러들어온놈, 정준하-모자란놈, 노홍철-정말 이상한놈 이 된다. 이는 단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돈가방 시리즈를 관통하며 캐릭터에 부여된 이름은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정준하는 가방을 제일 먼저 여는 행운을 잡지만,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이 돈이라고 단정짓는다. 머리를 쓴답시고 가짜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KTX를 타고 대전으로 피신해있기로 한다. 너무 미션이 쉽다며 어묵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정준하는 계속 모자란놈이 된다. 정형돈은 이전 무한도전에서 하하와의 관계가 어색해 '어색한 형돈'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매니저와도 어색하고,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연예계 기능인 형돈은 차를 타고 가는 족족 신호도 다 걸린다. 진짜 돈가방을 갖고 있었던 그는 자기 가방에 돈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나쁜놈 박명수에게 돈가방을 뺏긴다. 돈과도 사이가 어색해졌다. 전진은 하하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굴러들어온 놈이라 원조 멤버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신화'라는 최장수 아이돌 그룹의 멤버지만 그런 아우라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무한이기주의 앞에 당황해한다. 목욕탕이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멤버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정준하는 자꾸 그를 따돌리려 한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적응하는데, 어리바리한 척 하면서도 정준하를 끝까지 따라가서 목욕탕의 위치를 알아내고 정준하의 차까지 얻어타고 간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딴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이 돈가방 시리즈의 주인공 격이다. 좋은놈 유재석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어, 자칫 산만하게 퍼질 수 있는 미션 수행에 긴장감을 보여준다. 제일 처음 목욕탕에서 가방을 가지고 간 박명수를 뒤쫓으면서 돈가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굳이 서울역에 일찍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간파한다. 또한 멤버들에게 계속 전화하고 행동을 전체적으로 조합해서 형돈의 가방에 돈이 들었다는 것도 알아낸다. 그리고 대전으로 향하고 있는 정준하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려준다. 만약 유재석이 정준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정준하는 대전까지 가버렸을 것이고 미션수행의 긴장감은 확 떨어져 버릴 것이다. 또한 나쁜놈 박명수가 돈가방을 가지고 사라진 다음 나머지 멤버를 모아서 돈가방 팀 대 추적팀의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도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에게 있어 진정 좋은놈이다.
나쁜놈 박명수는 늑대의 직감으로 정형돈의 돈가방을 탈취하고 시리즈 내내 돈가방을 쥐고 앞서는 악당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상한놈 노홍철은 리틀 악당으로서 나쁜놈을 주도적으로 쫓는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서는 이상한 놈이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고, 좋은 놈과 연합을 해 나쁜놈에게 맞선다. 나쁜놈(이병헌)은 철저한 악당으로 그려지지 못한다. 그러나 돈가방 시리즈에서는 나쁜놈이 극을 진행하는 주요한 악당의 역을 맡는다. 나쁜놈과 이상한놈이 악당콤비를 형성하고 좋은놈이 나머지 멤버와 함께 그들을 추격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2008/07/17 - [티비랑 놀아봐] - <무한도전>에 <놈놈놈>이 나타났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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