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nse Up! TV

<무한도전>에 <놈놈놈>이 나타났다! - 2


3. 무한도전, 영화와 만화를 실험하다

무한도전의 돈가방 시리즈가 이전 무한도전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자막의 사용이다. 이전에는 무한도전 멤버를 향해 김태호 PD가 하는 혼잣말의 성격이 컸다. 어색한 정형돈이 재미보다는 이기는 것에 충실할 때 '형돈아 너 또 왜그러니'라고 하는 식의 말은 시청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TV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욕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시청률이 오른다. 시청자의 시선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내용이 나오고, 현재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터넷상의 신조어까지 쓰는 무한도전식 자막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돈가방 시리즈에서는 PD의 설명은 자제하고 간략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객관적인 자막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 설명에도 함축적인 잔재미들은 담겨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자주 쓰이는 자막은 미국의 마블 코믹스 등에서 보이는 짙은 검은색 굵은 테두리의 대사 풍선이다. 불꽃모양과 육각형 모양의 대사 풍선들은 멤버들의 대사를 그대로 전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PD의 설명보다 멤버들의 대사를 더 중요하게 담는 자막을 썼을까? 돈가방 시리즈는 각 멤버들의 움직임과 추격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따라가는 카메라 감독의 움직임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이들이 뛸 때 카메라 감독도 뛰고, 흔들리는 화면 때문에 짧게 끊어서 가는 편집일 수밖에 없다. 자칫 대사조차 제대로 전달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만화의 컷이 넘어가는 듯한 자막 풍선이 돈가방 시리즈의 짧고 잦은 편집을 산만하지 않게 해준다. 특히 각 멤버들이 전화를 할 때 주로 보여주는 1:1의 분할화면이나, 서울역 등으로 장소를 옮길 때 장소 전체를 스케치하는 분할화면들은 만화적 컷의 느낌을 극대화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007시리즈의 복장과 가방, 멤버들이 '딩디리딩딩딩'하며 끊임없이 부르는 주제음악 뿐만 아니라 <놈놈놈>을 큰 틀로 설정하고 캐릭터 이름, 음악을 가져온 돈가방 시리즈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영화들의 요소를 시리즈 안에 녹여낸다.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미션 장소인 서울역 장면에서는 <본 얼티메이텀>의 워털루역 장면이 연상된다.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워털루역에서 수많은 인파들을 헤치며 주인공 본은 암살자의 타겟이 된 사람을 찾는다. 수백개의 CCTV가 수많은 사람을 보고 있는 광장에서 본은 사각지대를 찾고,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그를 대피시킨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요원들을 찾아내고, 암살자가 있을 공간을 추적한다. 수많은 계단과 출입구, 통제되지 않는 인파가 있는 워털루역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이다. 청소부조차도 위장한 요원일 수 있고 위협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번째 미션 장소를 사람들이 많아 촬영하기 어려운 서울역으로 굳이 정한 것에는 이러한 스파이 게임적인 요소를 극대화하려는 이유가 있다. 비밀번호를 갖고 있는 요원에게 다가가서 "사랑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해야 하는 대사는 위험 요소를 극대화하면서도 무한도전적인 웃음을 준다. 실제로 시민들은 무한도전 멤버가 다가와서 갑자기 사랑한다고 했을 때 자기도 사랑한다고 하거나, 엉뚱한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거나, 왜 그러냐며 정색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촬영에 관심을 보이며 인파가 모이는 상황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너무나 많고 서로의 돈가방을 탈취하려는 음모까지 섞인다. 특히 돈이 들어있지 않은 다섯 개의 가방에는 돈가방 가까이에 가면 소리가 나는 추적기가 들어 있다. 이 추적기는 코엔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백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찾는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은 한 손에는 추적기, 다른 손에는 살인 무기인 가스통을 들고 돈가방을 추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찮은본색 vs. 영웅본색

영화적 요소를 패러디한 것 중에 가장 큰 재미를 주는 것은 나쁜놈 박명수의 '찮은 본색'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홍철을 쫓던 박명수는 한강의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고 바지가 찢어져 무릎이 까진다. 그리고 한강에 있는 구조대 사무실로 상처를 치료하러 가는데 상처를 소독하며 그는 단말마의 정체불명 중국어 비명을 낸다. 그리고 '찮은 본색'이 시작된다. 장국영이 부른 <영웅본색>의 주제가 '當年情'이 흐르는 가운데, 홍콩액션영화의 클리셰인 비상하는 비둘기들을 보여주고, 이어서 한시 중 5언율시 같은 형식으로 8행의 구절들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出演三年滿(출연삼년만)
金一封三百(금일봉삼백)
義理無所用(의리무소용)
無限利己男(무한이기남)
惡魔之根性(악마의근성)
嗚呼痛哉也(오호통재라)
完全鐵面皮(완전철면피)
巨星朴明洙(거성박명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때 그동안 박명수가 돈가방을 탈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영상들이 1분 정도 이어지는데 일부러 화면을 거칠게 필터링해 액션영화의 회상 장면 같은 효과를 주었다. <영웅본색>의 주제가와 어우러진 이 장면을 1분의 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진지한 화면과 대비되는 익살맞은 가짜 한시들이 진지하고 엄숙한 액션 장르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진정한 패러디를 보여준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음악에 대한 저작권 논란, 노홍철의 코디 월급 미지급 사건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시청률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무한도전은 결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인기 있고 반응 좋았던 포맷에 안주하고 그것을 무한반복하지 않았다. <출발 비디오 여행>의 작가 김세윤은 이 세상에 좀 더 일찍 선보였더라면하고 아쉬워 탄식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로 무한도전을 꼽았다. 무한도전이 5년만 먼저 시작됐더라도 토요일 오후가 그토록 무료하지는 않았을 것이란다. 무한도전 같은 공중파 방송도 헬로티비 덕분에 무한히 사랑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2008/07/17 - [티비랑 놀아봐] - <무한도전>에 <놈놈놈>이 나타났다! - 1

저작권자 ⓒ 헬로TV 블로그.(blog.cjhellotv.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