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여덟, 나의 온스타일
인터넷에서 우연히 “여성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이는 스물여덟이다”
라는 기사를 만났다. 여자의 외모와 대인관계가 절정에 오른다는 빛나는 시기, 나는 어
땠더라 기억을 되짚는 순간 떠오른 것은…,질끈 묶은 머리에 스머프처럼 시퍼런 수술
복 상하의를 대충 걸치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암울한 모습이었다. 스물여덟, 나
는 계속되는 당직과 응급실 호출로 아예 병원 당직실에서 서식하는 레지던트였던 것이
다. 일에 찌들어 화장은커녕 하루에 한 번 머리감기가 최대 목표였던 그 시절 나의 유
일한 낙은, 저녁회진을 마치거나 당직을 서는 틈틈이 ‘온스타일’ 채널을 보는 것이
었다. 진료와 흰 가운과 차트에 갇혀 지내던 그때, 내 영혼을 달래 주고 나 자신을 여자
로 느끼게 해주었던 것은 남자도 월급도 아닌 온스타일의 프로그램들이었다. <섹스앤
더시티>는 자유롭고 즐거운 바깥 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고, <오프라 윈프
리 쇼>는 여자들만의 공감과 위로로 나를 달래 주었다. <스타일 매거진> 같은 뷰티 프로
그램들은 멋있어지고픈 마음을 이해해 주면서 유용한 팁까지 알려주곤 했다. 2030세대
의 스타일 채널을 표방하며 출범한 온스타일은 여자들이 보기 원했던 바로 그 지점들
을 제대로 짚어서 긁어 주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해, 스무 개가 넘는 여
자 전공의 당직실에서 TV 채널이 모두 온스타일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숨쉬기 힘든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나는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예쁜 것을 사랑하고, 약간의 허영기도 있는 보통의 젊은 여
자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젊은 여자로서의 평범한 기질들이 폄하
되고 부정되어 결국 억압되는 미묘한 상황들과 마주쳐야 했다. 진료하면서 겪는 갈등
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단호하게 잘라 버려야 일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회식 때는 힘들었던 일을 위로받고 감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군대식으
로 윗사람부터 잔을 올려야 경우 바르다고 칭찬을 받았다. 정신과니까 환자분들 기분
을 생각해서 화사한 옷을 입고 싶었지만, 너무 튄다는 비난에 피치색 블라우스보다는
블랙 스트라이프 바지를 찾아 입게 되었다.물론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돌아가던 사회
이니 갑자기 달라지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들의 ‘스탠다드’와 다
르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여성의 개성과 존재 자체를 ‘잘못된 것, 하등한 것’이라
고 규정짓는 시선들을 직장에서, 거리에서,심지어 공중파 TV에서까지 마주치니 힘들
고 답답했다.그러던 차에 ‘온스타일’이 등장했던 것이다. 오, 여기서는 월급을 취미와 여행에 써도,
남자보다 구두를 좋아해도, 일이 중요하지만 스타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무도
욕하지 않는구나! 오, 방송에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가, 내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구나! 이것은 생각보다 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뭐랄까, 여기저기서
늘 2등 시민이었고 오른손잡이 전용 세상에서 왼손잡이 같았는데, 온스타일을 볼 때만
은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게다가 온스타일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성공
이나 라이프스타일은, 남자들이나 기성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남자
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성공하라는 자웅동체 씻나락 까먹는 얘기도 아니었고, 여자는 모
름지기 가정 돌보고 애 잘 키우는 게 최고라는 답답한 레퍼토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여
성성을 억누르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스스로를 믿
으며 일과 여가를, 경력과 사랑을 조화시키라고, 그것이 여자들의 방식이라고 그녀들
은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온스타일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새로
운 롤모델을 제시했다.
진정한 스타일 채널을 기대해!
가장 빛나는 나이, 스물여덟에서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꼬질꼬질한 레지던
트였던 나는 전문의가 되었고, 온스타일을 보며 자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속속 사회
로 진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온스타일을 사랑한다. 자기 안의 여성성과 허
영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주고, 팍팍한 삶에 지칠 때 찾아갈 수 있는 여자들만의 카페
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게다가 이젠 레지던트들도 상황이 허락하면 샤방한 스커트를 입거나
핑크색 립스틱을 바른다. 여자들끼리 커피전문점을 드나들 때 느끼던 불편한 시선들도 사라졌다.
여성적인 가치들은 더 이상 배척이나 폄하의 대상이 아니며, 스타일을 중시하는 것도 겉
멋이나 사치로 인식되지 않는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온스타일이 단단히 한몫
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온스타일이 여자들만
의 팬터지이자 아지트라는 지금의 정체성을뛰어넘어 한 단계 진화해야 할 때가 온 것
이 아닐까?
온스타일은 처음부터 뷰티채널이나 여성채널이 아닌 ‘스타일 채널’이었다. ‘스타일’이
란 그저 멋진 분위기나 차림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맵
시나 방식’을 말한다. 어쩌면 스타일이란 시크한 외모나 비싼 명품백보다는, 삶을 사랑
하고 아름다움을 즐기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요즘 사회에서는 스타일조차도 점수를 매기고 우열을 비교하는 대상이 되거
나, 남에게 뒤처지지 않게 강박적으로 챙겨야 하는 ‘무엇’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패션과 스타일조차도 즐기지 못하는 각박한 요즘 사람들에게 온스타일은 하이패션, 최첨
단 트렌드와 함께-온스타일 마니아로서 이런 것들은 당연히 좋다- 건강한 태도와 마
음의 여유까지 세련되게 전해줄 수 있는 채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균형 잡힌 생활습관,
매력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템포를 지켜갈 수 있
는 스타일에 대해, 멋진 삶의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제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스타
일이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어울리는지 모르고서는, 무작정 유행만 좇아서
는,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요시해서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빨리 성공하는 일만이
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온스타일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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