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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TV 매거진/2010 11

[COVER STORY] 천정명


천정명 귀엽고 나쁘고 속 깊은 남자
글 _정석희 TV칼럼니스트 | 사진 _보리


KBS <신데렐라 언니>에서 기훈(천정명 분)이 나직하게 부르던
“은조야” 이 한 마디는 수많은 여성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MBC <여우야 뭐하니>에서 맑고 난해한 아웃사이더
‘철수’ 또한 많은 누나들을 설레게 했다.
때로는 귀여운 남자로, 때로는 나쁜 남자로
연기자 천정명의 변신은 계속돼 왔지만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그만의 매력은 변함없다.
무명 시절 없이 순탄하게 자리 잡은 행운아로 보였는데
그 역시 실패와 좌절이라는 그늘에 몸과 마음이 잠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빛나는 것처럼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올 줄 알았던 그는 지금 누구보다 환하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체육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영화 <아 유 레디?>에
캐스팅되는 바람에 인생이 달라지게 됐다.



SBS <똑바로 살아라>에서 정윤(최정윤 분)이 정명(천정명 분)과 이별한 건 아버지(노주현 분)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한 정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제 천정명씨
미래도 불안했던 시절 아니었나?

KBS <학교2>에 잠깐 나온 적이 있지만 연기자를 꿈꾸지는 않았다. 사회체육을 전공했고 운동을
워낙 좋아해온 터라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영화 <아 유 레디?>
(2002)에 캐스팅되는 바람에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하나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은 팬터지 모험물
<아 유 레디?>는 총 관객수 1만 명 이하라는 흥행참패를 기록했고 그때 생애 최초의 좌절감을 맛봤다.
더구나 그 후 2년여 동안 끊임없이 오디션을 봤지만 낙방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빨리 군대에나 다녀와 새 길을 모색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을 즈음 <똑바로 살아라>에
캐스팅됐다. 캐스팅 자체는 순조로웠으나 이미 몇 달간 손발을 맞춘 팀에 후발 주자로 투입된 데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처음이다 보니 적응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김병욱 감독님은
온화한 분이셨지만 다른 제작진으로부터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힐난을 받기도 했으니까.
구타까지 당했다면 믿으려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오죽 혼자 헤맸으면 그랬겠는가 싶다. 물론 나중에
서로 진심이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지만 인생도, 연기도 많이 배운 작품이다.


아예 신인이거나 김민희처럼 연기력 논란이 있던 네 명의 젊은 연기자들이 예상 밖으로 잘해 줘서
놀라웠던 드라마 KBS <굿바이 솔로>(2006)로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해본
소감이 어떤가.

전작인 SBS <패션 70s>의 이재규 감독님을 통해서 연기 공부를 많이했고 느낀 바가 많았는데
<굿바이 솔로>로는 불투명했던 미래가 확실해진 느낌이었다. 특히 노희경 작가님은 실로 대단한 열정을 지닌 분이셨다. 촬영 현장에 매일 나와서 지켜봐 주시는 데다가 대본이 2회분량 이상은 이미 준비돼
있었으니까. 흔히 말하는 쪽대본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감독님과 작가님이 하나하나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촬영을 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요즘 드라마 제작 풍토에선 드문 광경이었다.
또한 감독을 배제한 채 작가와 배우가 연기 방향을 조율한다는 걸 연출자 입장에서 언짢게 여길 수도
있건만 기민수 감독님은 그걸 좋게 받아들여주시는 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마음에 맞는 또래들과 일하는 것도 좋았다. 날 촬영이 용평 스키장에서 있었는데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전국의 누나들을 가슴 뛰게 만들었던 <여우야 뭐하니>(2006)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해 최고의 키스신에 선정된 장면 등 드라마 장면 장면이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엔딩 키스신은 나 역시 참 좋았다. <여우야 뭐하니>는 두고두고, 보고 또 봐도 재미있고 훈훈한
작품이다. 권석장 감독님은 배우가 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분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나다운 연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고현정씨가 워낙 상대 배우를 잘받쳐주는 연기자여서 결과물이
좋았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역을 올려주고 그로써 두 사람 모두가 상승효과를 얻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기자끼리 인기를 두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줄 알았다. 요즘 방영 중인 SBS <대물>을 보면 상대 배우에 대한 고현정씨의 배려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작품을 해봤으니까 저땐 어땠겠구나 하는 걸 알겠더라.



사실 “은조야”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작가님의 추천을 받아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자꾸자꾸 되뇌며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은조야” 한 마디는 수많은 여성의 마음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파문을
남겼다. 하지만 중반부터 캐릭터가 흔들려 고생했을 것 같은데.

사실 “은조야”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작가님의 추천을 받아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자꾸자꾸
되뇌며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초반부여서 여유가 있을 때라 감독님과 여러 차례 감정을 맞춰
가며 찍고, 또다시 찍고, 그러다 보니 좋은 장면이 나왔다. 캐릭터가 중간에 심하게 흔들렸
던 건 사실이다. 이야기의 가닥이 너무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수습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고 아무래도
제대 후 복귀 작인지라 연기가 미흡했던 구석도 있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나
스스로 중심만 잘 잡고 있었다면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을 거다. 누구 탓을 하겠나. 중반에 너무
혼란스러워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대상포진까지 걸려 고생했는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성격도 못 되는지라 두루 총체적 난국이었다. 러브라인의 폭발이 너무 뒤늦게
이루어진 점도 아쉽고. 그나마 막바지에 잘 수습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감독님과 계속 얘기하며
조율하고 바꿔나가는 과정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취미로 서핑과 골프를 시작했는데
취미는 어디까지 취미다.
직업인 연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취미에 몰두할 생각은 없다.


명하고 또 그에 비해 주요 인물도 아닌지라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현승 감독님의
작품이기에 역할은 작더라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애꾸’라는 캐릭터인데
눈에 상처를 지닌 애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작품이다. 송강호 선배를 지켜본다거나 송강호 선배
뒤에서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지금 30% 이상 촬영이 진행되었는데 촬영장에 가서 슛
들어가기 전까지는 누구도 어떻게 찍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신선하다.
시나리오가 있어도 감독님과 배우가 현장에서 서로 동선을 상의하고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대본을
수정해 가며 찍는다. 감히 기대해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처음으로 러브라인이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로 좀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4년 KBS <해피투게더> ‘쟁반 노래방’에서의 활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시 KBS <북경 내 사랑>의 주연은 엄연히 김재원씨라 별 기대감 없이 나갔던 프로그램인데 의외의
반응을 얻었다. MC 유재석씨, 김제동씨가 그 전에 SBS <일요일이 좋다> ‘X맨을 찾아라’ 때 나를 겪어
본 분들이라 성향을 잘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맞장구를 쳐주신 덕이크다. 게스트인 탁재훈씨도
추임새를 잘 넣어 주셨고. 그렇게 세 분이 오며 가며 받아쳐 주니까 마치 물꼬가 트이듯 입이 터졌던 것
같다.


벌써 연예계 생활 10년이 넘었다. 그간 많은 사람들과 연을 맺었을 텐데 특별히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나.

‘쟁반 노래방’ 이후 도움을 주셨던 세 분과는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하며 지낸다. 굳이 특별한 인연을
꼽자면 고현정씨다. 연기자 생활이라는 게 작품 활동할 당시 반짝 친하게 지내다 흐지부지되기 일쑤인
데 누나는 그 누구보다 의리가 있다. 한번 연을 맺으면 일관성 있게 배려하고 지켜봐 준다.
그게 동생들은 물론 연배 높으신 어른들께도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다. <신데렐라 언니> 때도 계속
모니터를 해줬다. 강도가 있는 지적이라도 배려가 실린 진심 어린 조언이니까 기분이 상할 리 없다.
사람에 대한 도리에서부터 사회생활까지 누나를 통해 배우는 바가 크다. 누나의 소개로 친해진
조인성씨도 군대에서 모니터를 해주고 있고, 마침 <신데렐라 언니> 작가님이 인성이가 출연했던
SBS <봄날>과 <피아노>를 쓰신 분이기도 해서 조언을 많이 해줬다.


일 외에 깊이 파고드는 취미가 있나?
운동을 좋아해서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는데 아무래도 자주 못 간다. 대신 요즘은 서핑과 골프를 한다.
아직 초보 수준이라 누군가 한번 가자 하면 따라나서는 정도다. 그래도 취미는 어디까지 취미다. 직
업인 연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취미에 몰두할 생각은 없다.


그의 또 다른 매력, 그의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작품 <푸른 소금>을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만약 <푸른 소금>에서 여전
히 익숙한 청정명의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귀엽
거나 나쁘거나, 모두 속 깊은 그가 보여주는 다른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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