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영화
<부당거래>
<부당거래>
벌써 2년 전 일인데, 영화잡지에 격주로 한 번 영화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얼마나 류승완 감독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었던지(신작 영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고), 휴대전화 업체의 광고로 만들어진 단편영화 <타임리스>를 빌미로 칼럼 하나를 썼을 정도다. 그때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뜨거운 액션과 차가운 유머가 절묘하게 배합돼 있기 때문이라고, 온수 밸브와 냉수 밸브를 잘 조절해서 반신욕하기 좋은 40도의 수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미리 그 표현을 쓴 게 안타깝다. 지난해 가을에 개봉한 <부당거래>야말로 반신욕하기 딱 좋은 40도의 뜨끈뜨끈한 영화다.
뜨거운 주제를 유머로 식힌다
<주먹이 운다>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50도짜리 영화라면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38도로 서늘하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45도로 “앗 뜨거워!” 할 정도의 온도다. 류승완 감독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몸이 이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짝패>나 <부당거래>처럼 40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작품이다. <부당거래>는 시작부터 숨쉬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뜨겁게 달려가지만 살이 델 정도로 뜨거워지려고 하면 누군가 어김없이 욕조에다 찬물을 들이붓는다. 최철기 형사(황정민 분)가 뜨거운 물을 부으면 주양 검사(류승범 분)가 물을 식히고, 주양 검사가 뜨거워지면 공수사관(정만식 분)이 찬물을 끼얹는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영화가 된 것은 소재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연쇄살인 사건과 부정부패한 검사의 스폰서 문제, 입찰 비리와 권력계층의 부패 등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이렇게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우니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화상 입기 딱좋다. 유머로 식혀줄 수밖에 없다. 주양 검사가 최철기 형사에게 “저야 뭐 다된 밥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았을 뿐인데요, 뭐”라고 농을 치는 순간, 이게 뭐야 배우 황정민한테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라는 생각에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검사에게 혼나는 순간에도 꿋꿋하게 딸의 전화를 받으며 “응, 아빠야, 아빠 일하고 있으니까 이따 전화할게”라고 어눌하게 말하는 공수사관을 보는 순간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웃음이 난다. ‘해동’이라는 회사 이름을 두고 “해동인지 뭔지 레인지에 돌리면 뭐라도 나오겠죠”라는 말장난을 할 때도 그저 단순한 개그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유머가 빛난 순간이 많았지만 이토록 생활밀착형 유머와 말장난 개그가 적절히 뒤섞인 적은 없었다.
액션과 장난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영화의 스타일도 그렇다. 지금까지 류승완 영화의 장르는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이소룡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는 타란티노 영화 같았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성룡 영화 같았다. 그들을 베꼈다는 게 아니라 장르적 특성이 강하게 닮았다는 거다. 영화 속 배우나 이야기보다 스타일과 액션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야기와 연출이 절묘하다는 느낌보다는 대사와 액션이 재치 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부당거래>의 액션에서 류승완 감독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부당거래>에는 내가 ‘올해의 액션’으로 꼽는 (<아저씨>의 원빈에게 미안!) 장면이 있다. 최철기는 누군가를 죽이려 하고 대호(마동석 분)는 그걸 말리는 장면이다. 꼭 죽여야 하고 반드시 말려야 하는 절박함이 동작 하나하나에 사무치게 맺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꼭 쥐고 숨을 죽였다. 최철기가 장석구(유해진 분)를 일방적으로 ‘패는’ 장면 역시 기가 막힌다. 최철기가 장석구를 때리지만 장석구는 오히려 여유 있고, 최철기가 더 절박하다. 류승완 감독은 달라졌다. 액션 속에 이야기가 듬뿍 담기기 시작했다. 재치와 액션과 장난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부당거래>를 보고 나면 당연히 류승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여기서 또 한 발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재미있는 액션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나는 셋 다 좋다.
글 _김중혁(소설가)
2000년 <펭귄뉴스>로 등단, 단편소설 <엇박자D>로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년 첫 장편소설 <좀비들>을 선 보여 ‘좀비’라는 소재를 색다른 시선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악기들의 도서관>과 소설가 김영수와 <씨네21>에 함께 쓴 칼럼을 모은 영화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등이 있다.
뜨거운 주제를 유머로 식힌다
<주먹이 운다>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50도짜리 영화라면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38도로 서늘하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45도로 “앗 뜨거워!” 할 정도의 온도다. 류승완 감독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몸이 이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짝패>나 <부당거래>처럼 40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작품이다. <부당거래>는 시작부터 숨쉬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뜨겁게 달려가지만 살이 델 정도로 뜨거워지려고 하면 누군가 어김없이 욕조에다 찬물을 들이붓는다. 최철기 형사(황정민 분)가 뜨거운 물을 부으면 주양 검사(류승범 분)가 물을 식히고, 주양 검사가 뜨거워지면 공수사관(정만식 분)이 찬물을 끼얹는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영화가 된 것은 소재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연쇄살인 사건과 부정부패한 검사의 스폰서 문제, 입찰 비리와 권력계층의 부패 등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이렇게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우니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화상 입기 딱좋다. 유머로 식혀줄 수밖에 없다. 주양 검사가 최철기 형사에게 “저야 뭐 다된 밥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았을 뿐인데요, 뭐”라고 농을 치는 순간, 이게 뭐야 배우 황정민한테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라는 생각에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검사에게 혼나는 순간에도 꿋꿋하게 딸의 전화를 받으며 “응, 아빠야, 아빠 일하고 있으니까 이따 전화할게”라고 어눌하게 말하는 공수사관을 보는 순간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웃음이 난다. ‘해동’이라는 회사 이름을 두고 “해동인지 뭔지 레인지에 돌리면 뭐라도 나오겠죠”라는 말장난을 할 때도 그저 단순한 개그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유머가 빛난 순간이 많았지만 이토록 생활밀착형 유머와 말장난 개그가 적절히 뒤섞인 적은 없었다.
액션과 장난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영화의 스타일도 그렇다. 지금까지 류승완 영화의 장르는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이소룡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는 타란티노 영화 같았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성룡 영화 같았다. 그들을 베꼈다는 게 아니라 장르적 특성이 강하게 닮았다는 거다. 영화 속 배우나 이야기보다 스타일과 액션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야기와 연출이 절묘하다는 느낌보다는 대사와 액션이 재치 있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부당거래>의 액션에서 류승완 감독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부당거래>에는 내가 ‘올해의 액션’으로 꼽는 (<아저씨>의 원빈에게 미안!) 장면이 있다. 최철기는 누군가를 죽이려 하고 대호(마동석 분)는 그걸 말리는 장면이다. 꼭 죽여야 하고 반드시 말려야 하는 절박함이 동작 하나하나에 사무치게 맺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꼭 쥐고 숨을 죽였다. 최철기가 장석구(유해진 분)를 일방적으로 ‘패는’ 장면 역시 기가 막힌다. 최철기가 장석구를 때리지만 장석구는 오히려 여유 있고, 최철기가 더 절박하다. 류승완 감독은 달라졌다. 액션 속에 이야기가 듬뿍 담기기 시작했다. 재치와 액션과 장난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부당거래>를 보고 나면 당연히 류승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여기서 또 한 발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재미있는 액션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나는 셋 다 좋다.
글 _김중혁(소설가)
2000년 <펭귄뉴스>로 등단, 단편소설 <엇박자D>로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년 첫 장편소설 <좀비들>을 선 보여 ‘좀비’라는 소재를 색다른 시선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악기들의 도서관>과 소설가 김영수와 <씨네21>에 함께 쓴 칼럼을 모은 영화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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